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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와 가난과 눈물 詩人은 가난하다 아니 가난해야 한단다 詩의 씨앗은 박토에서만 자라는 이상한 씨앗인가 다른 씨앗들은 옥토에서 잘 자라는데 배부른 돼지에게서 詩는 나오지 않나 화려한 저택에서 詩의 새싹은 말라버리나 詩에는 가난이 묻어야 詩에는 눈물이 절어야 하나 정녕 詩는 눈물로 쓰고 눈물로 읽어야 하는 것인가! (이문조·시인) 2022. 12. 29.
가난해서 죄송합니다 가난해서 죄송합니다 누구처럼 많이 챙겨 광나지 않아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게다가 허리까지 꼿꼿하여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주제에 오지랖만 넓어 틈만 보면 기웃거리고 눈 부라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일렁일 때마다 딸린 가족들 앞세우지 않았다면 그냥 꺼져버렸을지도 모릅니다 가난해서 건방지고 가난해서 청승맞고 가난해서 경솔하여 엄청 죄송합니다 높디높고 잘나디잘난 나리님들 (임영준·시인, 부산 출생) 2022. 12. 29.
가난한 사람 괴로운 자여 엎드려라. 괴롬 속에 엎드리면 좀 나아진다. 저기 저기 바위들도 잠자는 것이 아니라 일어서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땅에 엎드려 있는 것 같다. 엎드려 모습을 깎는다. 오늘도 내일도 가난한 자여 가난 속에 더욱 엎드려라. 그것은 조금 나아지는 일 모든 것이 그렇다. 귀뚜라미도 자세히 보면 엎드려서 울고 오, 나무를 찍을 때 도끼도 한 번쯤 나무 속에 서서 힘을 내는 것이 아니라, 자세히 보면 새파란 날을 엎드리며 떤다. (신현정·시인, 1948-2009) 2022. 12. 29.
버릇된 가난 나도 모르게 버릇이 되었나 보다 요즘은 남의 외투를 걸친 듯 더러 서툰 일이 생기고 뒤꿈치가 벗겨질 듯 미끄러운 신발 거리는 타관처럼 낯선 얼굴로 넘친다 언제 이렇게 되었는가 마음 편하기로는 가난만한 것이 없는데 거기 질이 나서 모자람 없이 살았거늘 이제 새삼 무얼 바꾸랴 아무리 일러줘도 부자들은 모르는 아랫목 이불 깔린 구들장 같은 발 뻗고 기대기 은근하고 수더분한 그러다가 금세 눈앞이 젖어드는 그보다 좋은 세상 어디 있으랴만 나도 모르게 가난을 벗으려고 했나 보다 (이향아·시인, 1938-) 2022. 12.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