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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19

가난한 날의 행복 가난한 글쟁이로 가장 노릇을 한다는 게 그리 만만치가 않다 세 끼의 밥이야 그럭저럭 마련하더라도 늘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 빠듯한 살림살이에 곡예를 하듯 아슬아슬 꾸려온 지난 세월 월말이 되면 밀려드는 고지서 더미에 축 처지는 나의 어깨 아이들에게는 약한 모습 보이지 말자 해도 이따금 새어나오는 한숨 이런 남편의 모습을 보며 마음 여린 아내는 또 얼마나 가슴 졸일까 그래도 힘든 티를 내지 않고 나의 등을 토닥이는 아내의 작고 따스한 손 그래, 내일이야 기약할 수 없더라도 오늘 하루를 감사하며 살자 어느새 우뚝 자란 아이들이 있고 변함없이 착한 아내가 있으니 나도 이만하면 꽤 부자가 아닌가 (정연복·시인, 1957-) 2022. 12. 29.
가난한 유산 너희들에게 내가 죽어서 남길 유산은 부동산도 아니고 그 흔한 금은 보화들도 아니고 묵묵히 가난 속에도 함께하신 그분의 음성이 담긴 귀중한 성경책이요 (심홍섭·시인, 1960-) 2022. 12. 29.
가난을 위하여 속지 말자 결코 속지 말자 피와 눈물, 한숨이 섞이지 않은 책상 위 배부른 입에서 떨구는 윤기 나는 말과 글에 속지 말자 먼지구덩 속 갈라진 피엉킨 손톱 손가락 잘린 손을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하는 말과 글에 결코 속지 말자 가난을 사고 파는 철부지 알맹이 빠진 검불들 쓸데없는 말장난에 결코 속지 말자 일자무식 몸을 파는 야윈 살갗을 스치는 어려운 낱말들에 결코 속지 말자. 배고픔은 배고픈 사람만 아는 것 배부르고 기름진 멋스런 가난을 사고 파는 어려운 모국어에 결코 속지 말자. (김교서·노동자 시인) 2022. 12. 29.
가난으로 나는 가난으로 나는 당신을 얻겠습니다 땅뙈기도 없는 새가 하늘을 다 누리듯이 볼품없는 민들레가 햇볕을 다 누리듯이 못생긴 물고기가 바다를 다 누리듯이 나에게는 당신만이 주인이게 하겠습니다 당신만 내 곁에 계셔주시면 세상의 온갖 보배도 내 것이오니 당신만 내게 있으면 내 가난함이 어찌 가난이겠습니까 가난으로 나는 온 하늘의 별을 사겠습니다 가난으로 나는 온 누리의 주인이 되겠습니다 (홍수희·시인) 2022. 12. 29.